새벽이었어요. 어두운 창밖을 보니, 아직 세상은 잠들어 있는 듯 조용했어요. 평소라면 더 자고 싶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잠이 오지 않아서 부엌으로 향했어요.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먹을만한 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때 문득 쌀을 씻어서 밥을 지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침에 갓 지은 따끈한 밥을 먹으면 마음이 차분해질 것 같았어요.
쌀통에서 쌀을 퍼서 볼에 담았어요.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쌀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렸어요. 차가운 물을 받아 쌀을 씻기 시작했어요. 손끝으로 느껴지는 쌀알의 감촉과 물속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소리들이 마치 마음을 정리해주는 것 같았어요. 몇 번이고 물을 갈아가며 맑아지는 물을 보니, 마음속 어지러움도 함께 씻겨 나가는 듯했어요.
쌀을 다 씻고 나서 밥솥에 넣었어요. 물의 양을 적당히 맞추고 밥솥의 뚜껑을 닫았어요. 밥을 짓는 동안 집 안은 조용히 따뜻해졌어요. 밥이 익어가면서 퍼지는 고소한 냄새가 집안을 감싸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동안 잠시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르며 차분히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요.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밥이 지어지는 소리는 묘하게 위로가 되었어요. 마치 그 소리가 삶의 작은 리듬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어느덧 밥이 다 됐다는 소리가 들렸어요. 조심스럽게 밥솥 뚜껑을 열자 하얗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따뜻한 김이 얼굴을 감싸니, 순간 마음속까지 따뜻해졌어요. 숟가락으로 밥을 살짝 들어 올려 보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어요.
그릇에 밥을 퍼서 조심스레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어요. 쌀알 하나하나가 입안에서 퍼지는 느낌이 부드럽고 따뜻했어요. 이 한 숟가락의 밥이 새벽의 고요함과 함께 저를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주었어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순수한 밥맛이 오히려 더 진하게 느껴졌어요. 매일 먹는 밥이었지만, 이렇게 새벽에 혼자 지어 먹으니 더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밥을 먹으며 문득 생각했어요. 이렇게 단순한 과정이지만, 쌀을 씻고 밥을 지어 먹는 일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이라는 것을요. 이 단순한 행위가 오랜 시간 우리를 지켜주고, 또 위로해주었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저는 다시금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어요.
새벽에 지은 밥은 그 어느 때보다도 특별했어요. 새벽의 고요함과 따뜻한 밥의 조화가, 그 순간만큼은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도 가끔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그 시간이, 삶의 작은 쉼표가 되어줄 것 같았거든요.
새벽의 어둠을 깨고 혼자 먹은 밥이었지만, 그 속에서 많은 생각과 감정을 담을 수 있었어요. 그리 특별한 재료도, 복잡한 조리법도 없었지만, 새벽에 지은 밥 한 그릇이 그날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어요.